지금은 프로농구로 바뀌었지만 예전 농구대잔치로 농구에 대한 붐이
한참 일었을때 농구대잔치사상 최고 박빙의 승부 93~94 농구 대잔치
가 있다
막강한 허,동,택 트리오의 6년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우승을 했던 연세대
농구팀! 최고의 전성기를 열었던 연세대 였다
당시 주요멤버들을 살펴보면 문경은,이상민,서장훈,김훈,우지원,석주일
김재훈등을 꼽을수 있는데 문경은 졸업예정자로써 연세대에서의 마지막
승부였었고 연세대에서 국가대표가 3명이나 있을만큼 단연 농구대잔치의 우승
후보 였다 그 당시 연세대학교의 감독은 최희암 감독이었다
아마도 농구붐이 일어난건 TV방송에서의 마지막승부 란 드라마의 역할도
큰 작용을 했을것이다 그리고 아마 농구대잔치의 특징상 참신함과 스피등
지금의 프로농구에 비해서는 파워와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매력도
존재 했었고 프로농구처럼 1.2.3.4쿼터로 나누어 지지 않고 전반전과 후반전
으로 나뉘어져 장기레이스인 만큼 체력적으로 부담되 될수 있었다 물론 그당시엔 용병 선수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국내선수들의 각각의 역할도 중요하였고 프로농구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아무튼 정규리그
에서 연세대는 우승을 차지하고 플레이 오프에서 쟁쟁한 상대를 꺽어 나갔고 마지막 결승전을 남겨 놓고 있었다.
93~94 결승전
플레이 오프에서 기아의 허,동,택 트리오를 꺽고 만난적은 상무 였다 상무에는 이상범,남경원,오성식,정재근
표필상등이 있었는데 정재근과 표필상이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때였다
1차대회에서 기아를 꺽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연세대는 상무를 만나 지금은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마지막
승부에서 몇점차이가 나지 않을만큼 박빙의 승부를 하고 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연세대의 우승에
쐐기를 박은건 이상민 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상민은 가드이면서 3점슛을 쏘지 않았었다 즉 3점슛터는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고 상무가 점점 치고 올라오고 마지막에 3점슛라인에서 이상민은 골을 쏘아 올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그공은 그대로 농구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리하여 연세대는 상무를 맞아 우승의 쐐기를
박게 되고 농구대잔치 사상 처음으로 대학팀으로써 우승을차지 하게 된다
그당시 캐스터와 해설자가 한말은 거의 정확히 기억한다 이상민 선수 3점슛터는 아닌데 말이죠 라는 ...
연세대의 우승으로 끝난 농구 대잔치는 인터뷰를 하고 이상민 선수의 그 말도 기억하는데
이상민선수가 그 당시 들어갈것 같더라구요 라는 그 말을 ..... 당시 이상민선수의 팬으로서 15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말을잊을수가 없다 후에 이상민 선수는 컴퓨터 가드라는 명성과 트리플더블등 각종 기록등을 세운다
연세대 졸업후 농구대잔치 그리고 프로농구 출범하여 kcc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거듭났으나 본의 아니게
보호선수에서 밀려나게 되므로써 유니폼을 갈아 입게 되는 불운도 겪었지만 지금도 최고의 게임메이커로
명성을 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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